시조공 묘소 지도 | 시조묘소 찾아가는 길
임진왜란을 격으며 피난 중에 선조들의 귀중한 문집과 시조 아산군의 유품도 잃어 버리고 시조묘소도 찾아보지 못한 채 수 백년이 지나서, 1868년에 일가들 중 대표를 선발하여 천리길 아산으로 걸어서 시조묘소를 찾아 나섰다. 다음은 당시의 감격스러운 기록을 번역한 것이다. 시조능은 그 지역의 마을 사람들이 신당을 지어 장승상당이라고 보호하고
있었으므로 잘 보존되고 있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반대로 신당을 철거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967년에 와서 현지 마을 사람들의 협조를 얻어 신당을 철거하고 보수공사를 실시할 수 있었다.
시조 아산군 산소를 다시 찾은 사실(1868)
옛적 족보를 보면 "시조 이하 3대의 산소가 아산에 있다"고 하였으나 그 정확한 위치를 몰랐고 옛 어른들의 전하는 말을 들어 보아도 "아직 한 번도 성묘하러 다닌 적이 없다" 하였다. . . . . .
기사(1869)년 봄 산소에 참배한 기록
그리하여 발굴해 가지고 지석을 발견하여 정확한 증거를 밝히려 하는데 김씨 측과 마을 사람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방해를 놓아서 도저히 착수할 도리가 없었다. 나는 덕영과 읍에 들어가서 군수를 보고 그 사정을 상세히 진술하고 서류를 올렸다. 군수는 직접 공문을 써서 내렸다.
시조묘소 보수와 재실건립 실기(1967~1975)
1967년에 청송에 거주하는 용찬 군이 단신으로 천리 길을 수 차례 왕복하며 시조공 묘소를 확인하고 묘소 수호를 제의하여 종친회에서 시조공묘소보수추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이장인
김용학씨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1967년 10월 18일 신당 철거에
합의하고 묘소 공사를 시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73년 4월 29일
도동재 재실을 완공하였다. 시조공 묘제일자는 매년 양력 4월 둘째 일요일
오전 11시로 정하였다. 시조 묘소 아래에는 장영실의 단과 기념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