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인물(歷代人物)

 

고려조 및 조선조의 인물(現代人物)가나다순

  • 장응시(蔣應時) 고려(高麗) 때 정순대부(正順大夫)로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지냈다.
  • 장공수(蔣公秀) 고려조(高麗朝)에 광록대부(光祿大夫)에 올라 군기사정(軍器寺正),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를 역임하였다.
  • 장동수(蔣東秀) 고려에서 보승낭장(保勝郎將)을 지냈다.
  • 장숭ㅇ(蔣崇ㅇ) 호(號)는 천산재(天山齋). 고려(高麗) 때 정록대부(正祿大夫)로 군기감사(軍器監事) 겸 통총(統摠)을 지내고 판군기감사(判軍器監事)에 이르렀다.
  • 장춘ㅇ(蔣春ㅇ) 고려(高麗) 때 문하시랑(門下侍郞)을 역임하였다.
  • 장득분(蔣得芬) 호(號)는 만귀당(晩歸堂), 시호(諡號)는 문절(文節). 고려조(高麗朝)에 정순대부(正順大夫)로 판서운관사(判書雲觀事) 겸 도통사(都統使)를 역임하고, 봉익대부(奉翊大夫)로 판군기시사(判軍器侍事)를지냈다.
  • 장지수(蔣之守) 고려조(高麗朝)에 우참찬(右參贊)을 역임하였다.
  • 장균ㅇ(蔣均ㅇ) 초명(初名)은 균(鈞). 고려(高麗)에서 봉익대부(奉翊大夫)로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냈다.
  • 장자방(蔣自芳) 호(號)는 진적당(眞積堂). 고려에서 봉상대부(奉常大夫)로 삼사부사(三司副使) 겸 검교예빈경(檢校禮賓卿)을 역임하였다.
  • 장천서(蔣天叙) 고려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안의현감(安義縣監)을 지냈고, 시문(時文)에 능하여 야은(冶隱) 길재(吉再)와 도의교(道義交)로 시주(詩酒)를 즐겼다.
  • 장성길(蔣成吉) 고려조(高麗朝)에 가의대부(嘉義大夫)로 판도판서(版圖判書),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였다.
  • 장성발(蔣成發) 호(號)는 효효재(囂囂齋), 시호(諡號)는 문익(文翊). 고려 때 전공전서(典工典書)를 지냈다.
  • 장성휘(蔣成暉) 고려(高麗) 때 전서(典書)를 역임하였다.
  • 장성미(蔣成美) 고려(高麗)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감사(監司) 전법전서(典法典書)를 역임하였다.
  • 장성우(蔣成祐) 고려(高麗)에서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냈다.
  • 장돈의(蔣敦義) 호(號)는 대중재(大中齋). 조선초(朝鮮初)에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예조 참의(禮曹參議)를 역임하였다.
  • 장을유(蔣乙濡) 고려말(高麗末)에 중문지후(中門祗候)를 지냈다.
  • 장영실(蔣英實) 1423년(세종 5) 과학적 재능이 특출하여 왕의 특명(特命)으로 발탁되어 상의원별좌(尙衣院別坐)가 되고, 중추원사(中樞院事) 이 천(李 蕆)을 도와 간의대(簡儀臺) 제작에 착수하고 각종 천문의(天文儀) 제작을 감독했다. 1433년 혼천의(渾天儀) 제작에 착수하여 1년 만에 완성, 이듬해 금속활자 갑인자(甲寅字)의 주조를 지휘 감독하는 한편 김 빈(金 鑌)과함께 최초의 물시계인 보루각(報漏閣)의 자격루(自擊漏)를 제작 완성했다. 1437년 5년 동안 천체관측용 대소간의(大小簡儀), 휴대용 해시계인 현주일귀(縣珠日晷)와 천평일귀(天平日晷), 해시계인 정남일귀(定南日晷), 공중시계인 앙부일귀(仰釜日晷), 주야겸용의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등을 제작 완료하고 경상도채방별감(慶尙道採訪別監)이 되어 동(銅)과 철(鐵)의 채광제련을 감독했다. 1441년 세계 최초의 측우기(測雨器)와 수표(水標)를 발명한 공(功)으로 상호군(上護軍)에 특진되었으나 이듬해 그가 감독 제작한 왕의 가마가 부서져 불경죄로 의금부(義禁府)에 투옥, 장형(杖刑)을 받은 뒤 파직 당했다. 선생의 업적이 세월이 흐를수록 높이 평가되어 1983년 전국의 후손과 각계 각층(各界各層)의 인사들이 모여 과학선현의 기념사업회를 결성하고, 이듬해 선생의 뜻을 담아 충남 아산군 인주면 문방리에 있는 시조공 서(壻)의 표착지(漂着地)에 추모 기념비를 세워 유지를 기리고 있다.
  • 장영무(蔣英茂) 조선(朝鮮) 때 군기소감(軍器少監)을 역임하였다.
  • 장의전(蔣義全) 조선조때 부안현감(扶安縣監)을 지냈다.
  • 장문도(蔣聞道) 조선조때 청송부사(靑松府使)를 지냈다.
  • 장흥계(蔣興繼) 조선조(朝鮮朝)에 삼화현령(三和縣令)을 역임하였다.
  • 장흥부(蔣興膚) 조선조(朝鮮朝)에 통정대부(通政大夫)로 동래부사(東來府使)를 지냈다.
  • 장사희(蔣思熙) 조선 때 조산대부(朝散大夫)에 올라 군기감첨정(軍器監僉正), 내급사(內給事)를 역임하였다.
  • 장호연(蔣浩然) 조선(朝鮮) 때 건공장군(建功將軍)으로 사직(司直)을 역임하였다.
  • 장처지(蔣處智) 조선조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감찰(監察),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 장처인(蔣處仁) 호(號)는 인재(認齋).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문인. 조선(朝鮮) 때 삼척부사(三陟府使)를 역임하였다.
  • 장처용(蔣處勇) 자(字)는 이의(而義), 호(號)는 심지(心智). 김종직(金宗直)의 문인. 1480년(성종 11) 등제(登第)하여 훈련원 도정(訓鍊院 都正), 의흥현감(義興縣監), 안동판관(安東判官)을 지내고, 온성부사(穩城府使), 경기 병마절도사(輕騎兵馬節度使)를 거쳐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 장우ㅇ(蔣芋ㅇ) 조선(朝鮮) 때 운봉현감(세종실록 1441) 및 사헌부 감찰을 역임하였다.
  • 장림ㅇ(蔣霖ㅇ) 조선(朝鮮) 때 부사용(副司勇)을 지냈다.
  • 장세번(蔣世蕃) 조선조(朝鮮朝)에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상호군(上護軍)을 지냈다.
  • 장심ㅇ(蔣諶ㅇ) 조선에서 충순위(忠順衛)에 이르렀다.
  • 장번ㅇ(蔣蕃ㅇ) 조선(朝鮮) 때 부사직(副司直)을 역임하고 좌통례원(左通禮院), 충순위(忠順衛)에 추증(追贈)되었다.
  • 장희문(蔣熙文) 조선조(朝鮮朝)에 거제부사(巨濟府使)를 역임하였다.
  • 장자제(蔣自濟) 조선(朝鮮) 때 개령현감(開寧縣監)을 지냈다.
  • 장자원(蔣自元) 자(字)는 성인(性仁), 호(號)는 덕봉(德峰). 조선조(朝鮮朝)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중직대부(中直大夫)로 한성부참군(漢城府參軍)을 지냈다.
  • 장흡ㅇ(蔣洽ㅇ) 조선에서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 장윤종(蔣胤宗)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내고 통정대부(通政大夫),승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에 추증되었다.
  • 장사종(蔣嗣宗) 조선(朝鮮) 때 충장위사과(忠蔣衛司果)를 역임하였다.
  • 장세침(蔣世琛) 조선조(朝鮮朝)에 옥과현감(玉果縣監)을 지냈다.
  • 장사윤(蔣思胤) 호(號)는 퇴금(退錦). 조선(朝鮮) 때 선무랑(宣務郞)으로 영해교수(寧海敎授)를 역임하였다.
  • 장옥련(蔣玉璉) 조선(朝鮮) 때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 장용ㅇ(蔣龍ㅇ) 자(字)는 문서(文瑞). 조선 때 삼척부사(三陟府使),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를 역임하고,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증직되었다.
  • 장명원(蔣明遠) 1540년(중종 35) 등제(登第)하여 안골포 만호(安骨浦萬戶)를 역임하고 문과(文科)에 급제, 이어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가덕첨절제사(加德僉節制使), 판병조참지(判兵曹參知)를 거쳐 동래부사(東來府使)를 지내고,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추증되었다.
  • 장효범(蔣孝範) 字는 선원(善源) 中宗때 경주판관(慶州判官)을 지냈다
  • 장만중(蔣萬重) 조선조(朝鮮朝)에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 장후완(蔣後琬) 1572(선조 5)~1644(인조 22) 자(字)는 군좌(君佐), 호(號)는 구천(龜川). 음보(蔭補)로 옥포진 만호(玉浦鎭萬戶)가 되고, 선전관(宣傳官), 훈련원정(訓鍊院正), 문경현감(聞慶縣監) 등을 지냈다. 1605년 무과(武科)에 급제, 부총관(副摠管)에 이르러 울산소모대장(蔚山召募大將), 정평부사(定平府使) 등을 역임하고, 이 괄(李 适)의 난에 연루 되었다는 무고(誣告)를 받고 유배되었다가 복관(復官)이 되어 총관(總管)이 되었으나 사직했다.
  • 장입국(蔣入國) 자(字)는 치군(致君). 조선(朝鮮) 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함경남도방어사(咸鏡南道防禦使), 정평도호부사(定平都護府使)를 거쳐 병마동첨절제사(兵馬同僉節制使)를 역임하였다.
  • 장입실(蔣入室) 자(字)는 치성(致聖), 호(號)는 회와(悔窩). 조선(朝鮮)때 조봉대부(朝奉大夫)로 의성훈도(義城訓導)를 지냈다.
  • 장입도(蔣入道) 조선조에 장사랑(將仕郞)으로 봉사(奉事)를 역임하였다.
  • 장문헌(蔣文獻) 자(字)는 응징(膺懲). 조선(朝鮮) 때 어란포만호(魚蘭浦萬戶)를 지냈다.
  • 장홍례(蔣弘禮) 조선 때 선무랑(宣務郞)으로 찰방(察訪)을 지냈다.
  • 장춘수(蔣椿壽) 조선조(朝鮮朝)에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 장경신(蔣敬臣) 조선(朝鮮)에서 선교랑(宣敎郞)으로 성현 찰방(省峴察訪)을 지냈다.
  • 장문귀(蔣文龜) 자(字)는 성서(聖緖), 호(號)는 방곡(芳谷). 조선(朝鮮)때 선무랑(宣務郞)으로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역임하였다.
  • 장눌ㅇ(蔣訥ㅇ) 자(字)는 민행(敏行). 조선조(朝鮮朝)에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지냈다.
  • 장원ㅇ(蔣謜ㅇ) 자(字)는 택보(擇甫). 조선(朝鮮) 때 선략장군(宣略將軍)으로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를 지냈다.
  • 장양ㅇ(蔣諒ㅇ) 자(字)는 자신(子信). 조선에서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겸 중추부사(中樞府事)를 거쳐 장연현감 (長淵縣監) 등 여러 관직을 지내고, 평해군수(平海郡守) 겸 강릉병마절제사(江陵兵馬節制使)에 이르렀다.
  • 장시ㅇ(蔣諟ㅇ) 조선 때 선략장군(宣略將軍)으로 충무위 부사직(忠武衛副司直)을 지냈다.
  • 장열ㅇ(蔣說ㅇ) 조선(朝鮮) 때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 장겸ㅇ(蔣謙ㅇ) 조선 인조(仁祖) 때 문과(文科)에 급제, 공조좌랑(工曹佐郞)을 역임하고, 병조참의(兵曹參議) 겸 훈련원도정(訓鍊院都正)에 추증(追贈)되었다.
  • 장계현(蔣啓賢) 자(字)는 여옥(如玉), 호(號)는 광암(廣巖). 조선에서 승훈랑(承訓郞)으로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를 거쳐,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장희춘(蔣希春) 자(字)는 인경(仁敬), 호(號)는 성재(誠齋). 조선 선조조(宣祖朝)에 문과(文科)에 급제, 형조 정랑(刑曹正郞)을 거쳐 통훈대부로 장례원 사평을 지냈다.
  • 장희양(蔣希陽) 조선(朝鮮) 때 선무랑(宣務郞)으로 부장(部將)을 지내고, 원종공신(原從功臣)에 녹훈(錄勳)되었다.
  • 장천배(蔣天培) 조선조에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 장언기(蔣彦起) 자(字)는 성찬(聖贊). 조선 때 수문장(守門將)을 지냈다.
  • 장형ㅇ(蔣珩ㅇ) 자(字)는 계진(季珍), 호(號)는 시암(柴岩). 조선조(朝鮮朝)에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연일현감(延日縣監)을 지냈다.
  • 장계조(蔣繼祖) 자(字)는 효선(孝先). 조선(朝鮮) 때 선무랑(宣務郞)으로 상의원주부(尙衣院主簿)를 역임하였다.
  • 장문익(蔣文益) 호는 조경암(釣耕庵) 조선때 의병장(義兵將)을 지냈다.
  • 장시란(蔣時蘭) 자(字)는 형숙(馨淑). 조선(朝鮮)에서 훈련원봉사(訓鍊院奉事)를 지냈다.
  • 장이원(蔣以源) 자(字)는 근보(謹輔), 호(號)는 대암(大菴). 조선 때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역임하였다.
  • 장득룡(蔣得龍) 자(字)는 치백(致伯). 조선조(朝鮮朝)에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를 역임하였다.
  • 장영ㅇ(蔣楹ㅇ) 초명(初名)은 계건(啓乾), 자(字)는 성오(成五), 호(號)는 동암(東巖). 조선 때 수직(壽職)으로 공조참판(工曹參判)에 올랐다.
  • 장유방(蔣遺芳) 조선(朝鮮) 때 부사과(副司果)를 지냈다.
  • 장융한(蔣隆漢) 조선(朝鮮) 때 선무랑(宣務郞)으로 율봉도찰방(栗峯道察訪)을 지냈다.
  • 장주한(蔣柱漢) 자(字)는 흥도(興道). 조선(朝鮮) 때 헌릉참봉(獻陵參奉)을 거쳐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을 역임하였다.
  • 장민ㅇ(蔣旼ㅇ) 자(字)는 여징(汝澄). 조선(朝鮮) 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 장규원(蔣奎源) 字는 우성(禹成) 호는 만묵(晩黙). 學者
  • 장희적(蔣熙績) 字는 현재(顯哉) 호는 세심정(洗心亭). 學者.
  • 장한명(蔣漢明) 字는 여빈(汝彬)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 장진우(蔣鎭宇) 호는 죽재(竹齋) 수문장훈련주부(守門將訓練主簿) 강영縣監 신천군수(信川郡守)를 지냈다.
  • 장남ㅇ(蔣喃ㅇ) 字는 여양(汝陽), 호는 빙암(氷岩)(梅山). 조선때 郡守를 역임하였다.
  • 장명달(蔣明達) 조선(朝鮮) 때 선략장군(宣略將軍)에 올랐다.
  • 장흥조(蔣興祖) 조선(朝鮮) 때 병절교위(秉節校尉)로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를 지냈다.
  • 장재욱(蔣載郁) 조선(朝鮮)에서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지냈다.
  • 장원일(蔣元一) 자(字)는 자화(子和). 조선조(朝鮮朝)에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 겸 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을 지냈다.
  • 장헌문(蔣憲文) 1870年(高宗7年)~1926年 韓末의 의병대장(義兵大將) 경북 포항시 장기 출생이고 1909年 일본경찰에 잡혀 大邱地方法院에서 懲役10年형을 言渡받았다. 1977年 建國褒章이 추서되고 大田國立墓地 愛國志士 第2墓域 65호에 安葬되어 있다.

근대인물(近代人物)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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