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돈의(蔣敦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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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도서
慶尙道
龍宮
形勝 一帶水四圍山
蔣敦義詩
一帶水如會稽水四圍山似永嘉山 (원주)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장돈의(蔣敦義) / 문과 세종(世宗) 경자(庚子) 식년시(式年試) 동진사(同進士)
구분 : 조선시대과거합격자 날짜 :
분류 : 인물 > 조선시대과거합격자
제공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세종 39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월 4일(정해) 4번째기사
《강목통감》에 착오가 많은 책임으로 장돈의와 배강을 의금부에 가두라 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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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서 저작랑(校書著作郞) 장돈의(蔣敦義)와 성균 직학(成均直學) 배강(裴杠)을 의금부에 가두도록 명하였으니, 주자소(鑄字所)의 관원으로서 《강목통감(綱目通鑑)》을 인쇄하였는데 착오(錯誤)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3책 106면
【분류】 *군사-지방군(地方軍) / *군사-군기(軍器)



세종 39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월 12일(을미) 3번째기사
장돈의와 배강의 관직을 파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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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돈의(蔣敦義)와 배강(裴杠)의 관직을 파면하라고 명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3책 107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세종 86권, 21년(1439 기미 / 명 정통(正統) 4년) 7월 14일(경신) 2번째기사
기천 현감 장돈의를 불러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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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천 현감(基川縣監) 장돈의(蔣敦義)가 하직하니, 임금이 불러 보고 말하기를,
“우리 나라가 근년 이래로 한재가 심한 것은, 내가 어진 정사[仁政]의 술법을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본도(本道)는 지난해에 조금 풍년이 들었고, 금년에도 비가 또한 흡족하니 장차 풍년의 징조가 있다. 그러나 충청도(忠淸道)에 인접하여 있고, 충청도의 한재가 더욱 심하여 추수(秋收)의 기망을 아직 알 수 없으니, 만일 곡식을 옮기는 일이 있게 되면 반드시 백성의 힘을 수고롭게 할 것이니, 내가 심히 염려한다. 네가 그 고을에 가서 힘써 백성을 사랑하는 방도를 다하여, 내 마음에 맞게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4책 226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과학-천기(天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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