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牙山蔣氏 유래
아산장씨 유래에 대한 조사분석 아산장씨와 타성씨간의 세보자료 대조
중국 장(蔣)씨의 시조공 휘 백령의 묘 참배기
장씨(蔣氏)의 근원은 멀리 중국의 하우(夏禹)가 구주(九州)를 획정했을 때 예주(豫州)지역에서 시작되었다.
주대(周代)에 와서 주공(周公)의 세째 아들 백령(伯齡)이 하남성(河南省)
기사현(期思縣)을 장국(蔣國)으로 하사 받아 나라이름을 성(姓)으로 삼은 것이 장씨(蔣氏)의 시초이다. 그 후 한(漢), 양(梁), 당(唐), 송(宋)의 여러 왕조(王朝)에 걸쳐 뚜렷한 사적을 가진 인물이 역사에 끊임없이 기록되었다.
아산장씨의 시조(始祖)인 장서(蔣壻)는 중국 송조(宋朝)에서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신경위대장군(神慶衛大將軍)을 지냈으며 금(金)나라가 송(宋)을 침입하자 병부상서(兵部尙書)
이강(李綱)과 함께 항전(抗戰), 적에게 한치라도 땅을 빼앗겨서는 안되며 끝까지
사수(死守)할 것을 조정에 건의하였다. 그러나 조정의 의론(議論)이 불합(不合)하여,
자기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자 오(吳)씨, 임(林)씨와 함께 배를 타고 동으로 망명, 우리나라의 충남 아산군 인주면
문방리에 표착(漂着)하였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고려 조정에서는 중국에 탐문(探問)한 바 후히
대접하라는 전달을 받았다. 고려에서는 서(壻)에게 아산의 일부 지역을 식읍으로 하사하고 아산군(牙山君)에
봉했다. 장씨(蔣氏)는 대대로 이곳에 거주하여 장원촌(蔣原村)이라는 땅이름 까지 생기게 되었다.
서(壻)의 증손 숭(崇)은 고려조에 정록대부(正祿大夫)로 판군기감사(判軍器監事)
겸 도총사(都摠事)였는데 고려태자첨사(高麗太子詹事) 의성군(義城君) 김용비(金龍庇)의 딸에게 장가들어 이 때부터 경북 의성에서 살게 되었으며, 군위, 경산, 밀양, 경주 등 경남북(慶南北) 일원으로 집성촌(集姓村)이 생겨났다.
우리나라 장씨(蔣氏)의 본관은 문헌에 아산, 청송, 김포 등 여러 본이 기록되어 있으나 모두가
동원(同源)이므로 현존(現存)하는 장씨는 아산장씨(牙山蔣氏)로 단일화하고 있다.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아산 蔣씨는 남한에
총 5,557가구, 17,708명이 살고 있으며, 인구 순위는 95위로 밝혀졌다.
아산장씨 유래에 대한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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