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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충렬(忠烈). 문종 때 문과에 급제, 좌보궐지제고(左補闕知制誥)를
지냈다. 1085년(선종 2) 어사중승(御史中丞) 때 왕제(王弟) 후(煦)가 몰래 송나라 상선을 타고 출국하자, 왕명을 받고 추적했으나
실패하였다. 또 왕의 총희(寵姬) 만춘(萬春)이 집을 크게 짓는 것을 규탄하고 이를 허물 것을 청하였다. 1091년(선종 8) 예부시랑 때 사은
겸 진봉사(謝恩兼進奉使) 이자의(李資義)와 함께 송나라에 다녀왔다. 숙종 초 예부상서 등을 거쳐, 1104년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내고, 1105년 태자태부(太子太傅)가 되었다. 예종
즉위 후 수태위 문하시중상주국(守太尉門下侍中上柱國)을 지내고, 1106년 수태보(守太保)에 이르렀다. 예종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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