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종(睿宗,1079~1122) ]

    고려 제16대왕 재위기간 1105∼1122

 o 출생과 성장과정

    예종은 숙종과 명의왕후 유씨의 맏아들로서 1079년 정월 정축일에 태어났으며 이름은 우. 자는 세민(世民)이다. 일찍부터 뜻이 깊고 침착하여 도량이 넓었으며 학문을 좋아하였다. 1094년에 검교사공 주국으로 임명되어 처음으로 벼슬을 받았으며, 여러번 승진하여 태위에 올랐다가 아버지 숙종이 왕위에 오른지 5년만인 1100년에 왕태자에 책봉되었다. 숙종이 동명성왕능에 참배갔다 오다가 죽음을 맞이한후 제16대왕으로 등극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 27세이였다.

 

 o 고려 제16대 왕으로 등극

    예종은 즉위후 한달여만에 조정을 개편하였는데 그이유는 여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였다. 여진은 그의 추장 아골타의 영도 아래 급속하게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부왕인 숙종의 여진정벌에 대한 서소(誓疏:맹세하는 축원문)를 간직하고 즉위한 뒤 군법을 정비하고 신기군을 사열하는 등 여진정벌에 힘써 1107년(예종 2) 에 윤관(尹瓘·오연총(吳延寵) 등으로 하여금 여진을 쳐서 대파하고 이듬 해에는 함흥평야 일대에 9성(城)을 설치하게 하였다.
    그러나 계속적인 여진족의 침입, 9성방비의 어려움, 또 윤관의 공을 시기하 는 자들의 책동으로 1년 만에 9성을 철폐하고 여진에게 돌려주었다.
1109년 국학(國學)에 학과별 전문강좌인 칠재(七齋)를 설치하여 관학(官學) 의 진흥을 꾀하였다. 1112년 혜민국(惠民局)을 설치하여 빈민들의 시약을 담당하게 하였고, 이 듬해에는 예의상정소(禮儀詳定所)를 설치하였다.
    1115년 완안부(完顔部)의 추장 아골타가 여진족을 통일하여 황제라 일컫고 나라 이름을 금(金)이라 칭하자, 요(遼)나라에서 금나라를 정벌하기 위하여 고려에 원병을 청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이렇듯 중립정책으로 변방을 안정시키고 동시에 영토확장의 행운도 얻은 예종은 변방의 안정을 꾀하면서도 꾸준히 문화정책과 민심안정책을 실시했다.
    1116년 청연각과 보문각(寶文閣)을 짓고 학사(學士)를 두어 경적(經籍)을 토 론하게 함으로써 유학을 크게 일으켰으며, 송나라에서 대성악(大晟樂)을 들여왔는데, 이것이 아악(雅樂)이라는 궁중음악이다.
    1117년 금나라에서 “형인 대여진금국황제(大女眞金國皇帝)가 아우인 고려 국왕에게 글을 보낸다.”는 글로써 화친하기를 청하였으나, 조정의 반대로 회답하지 않았다. 1119년 양현고(養賢庫)라는 장학재단을 국학에 설립하였다. 이때 유사(有司) 에게 명하여 학사(學舍)를 널리 설치하고, 국학 칠재의 정원을 유학 60인과 무학 17인으로 하며, 명유를 뽑아 학관(學官)으로 삼아 가르치게 하니 문풍 이 크게 진작되었다. 1120년 팔관회를 열고 태조의 공신인 신숭겸(申崇謙)·김락(金樂)을 추도하여 도이장가를 지었다. 1122년 3월에 그의 등에 자그마한 종기가 하나 발견되는데, 그후로 병상에 눕더니 한달만에 44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으니, 재위17년 만의 일이었다. 능은 개성에 있는 유릉 (裕陵)이며,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o 예종의 가족들

    예종은 경화왕후 이씨, 순덕왕후 이씨, 문정왕후 왕씨, 숙비 최씨 등 4명의 부인을 두었으며, 제2비 문경왕후에게서 인종과 승덕, 흥경 두 공주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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