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록(東槎錄)     강홍중

  3월
  7일(을묘)
 
맑음. 수사와 첨사가 찾아와 보았다. 조반 후에 발행하는데 상사는 동래에 들르지 않고 곧장 양산(梁山)으로 향하였으니, 부사(府使)와 감정이 있는 까닭이었다. 나는 신기(神氣)가 불평하여 유숙하였는데, 동래 부사와 울산 부사가 와서 담화하였고, 조금 후에 종사가 또한 와서 담화하다가 곧 양산(梁山)으로 향하였다. 역관 권상(權常)이 와서 뵈었는데, 공사로 인하여 내려온 지 여러 날이 되었다 한다. 동지(同知) 장후완(蔣後琬)이 찾아왔는데, 이곳에 충군 정배(充軍定配 충군은 죄를 지은 벼슬아치를 군역에, 죄를 지은 평민을 천역군에 편입시키던 형벌)되어 있었다.
부산에서 발행할 때에 쇄환인 등이 서로 이끌고 따라오며 말 앞에서 통곡하였다. 아마 배 안에서는 주방(廚房)에서 공궤하였는데, 부산에 와서는 의뢰할 곳이 없고, 고향으로 가고자 해도 또 길을 알지 못하여서이리라. 이 때문에 울부짖으며 따라오니, 정경이 지극히 가련하였다. 행중(行中)의 나머지 양식을 덜어내어 각기 5일간 양식을 주어 보내고, 그 살던 고을에 관문(關文)을 써서 각기 그 사람에게 부쳤다.
행중의 쓰고 남은 쌀ㆍ면(麪) 잡물을 모두 봉하고 문서를 만들어 감사(監司)에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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