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명 行狀5
한글문서명 행장5
이명(한자) ()
발/수/찬자 #(#)/#(#)/이시명(李時明)
발급목적 이정회의 행적을 기록하여 남김
간행년(서기력) 仁祖16(1638 - )
크기 29×57cm
관인수 0
소장처 원소장처와 동일
소장처1 경상북도
소장처2 안동시
소장분류
주제분류 證憑類, 證憑類, 行狀
행장5(行狀5)
해제작성 김학수
해제작성일 2000-11-01
간행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작성시기 1638
【정의】
1638년(仁祖 16) 李時明이 撰한 李庭檜(1542-1612)의 行狀.

【내용】
[개요]
이정회의 행장으로 찬자는 石溪 李時明(1590∼1674)이며, 편찬 시기는 1638년(仁祖 16)이다. 찬자 이시명은 이정회의 생질이며 17세기 후반 영남학파를 대표하던 유학자인 葛庵 李玄逸(1627∼1704)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이 글은 이시명의『석계집』(卷4)에도 수록되어 있다.

世系와 주요 行蹟이 서술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문서의 전반부가 절취되어 있어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석계집』에 수록된 행장에 따르면, 이정회의 자는 景直, 號는 松澗, 본관은 眞城이다. 부사 李禎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참봉 希顔이며, 어머니는 의성 김씨이다. 의성 김씨는 영남학파의 적전으로 인식된 金誠一의 고모이다.

이정회는 어려서부터 효성과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권대기에게 나아가 학문의 기초를 세웠다. 이후 청년기에는 族祖 이황의 문하에 나아가 도학을 체험하였으며, 1568년(선조 1)에는 정탁・구봉령의 추천으로 수위부위에 임명되어 관직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1586년(선조 19)에는 통례원인의가 되고, 이듬해인 1587년에는 사은사 배삼익을 수행하여 명나라를 다녀오기도 했다. 이후 1590년에는 선온서주부, 사헌부감찰을 거쳐 광국원종공신에 책훈되었으며, 1592년 횡성현감 재직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우 李庭栢을 안동으로 보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1597년(선조 30)에는 의흥현감으로서 선정되어 선정비가 세워졌으며, 1598년에는 관직으르 버리고 진보 文巖山으로 들어가 은거하는 한편 玉洞書院을 건립하여 이황을 향사하였다.

이후 그는 松澗亭을 지어 著述과 家藏文獻의 정리에 노력하다가 1612년 7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柳成龍, 金誠一, 鄭逑, 裵三益 등 이황 문하의 고제들과 두루 교유하였으며, 특히 權宇와 金垓와는 金蘭之交로 통할 정도로 친분이 막역하였다.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으며, 대표적인 저술로는『松澗日記』와『松澗集』이 있다. 후일 鵲山祠에 배향되었다.

[인물]
權宇(1552∼1590)의 字는 定甫, 號는 松巢, 본관은 안동이다. 이정회의 스승 權大器의 아들이다. 이황의 문인으로 18세에 향시에 장원하고, 19세에는 李滉으로부터 啓蒙傳義의 講義를 받았다. 1573년(선조 6)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과거를 단념하고 위기지학에 주력하였다. 1586년에는 경릉참봉을 거쳐 왕자사부에 올랐고, 39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광해군이 예관을 보내 치제하였다. 안동의 鏡光書院에 위패가 봉안되었다.

金垓(15550∼1593)의 자는 達遠, 호는 近始齋, 본관은 光山이다. 烏川七君子로 유명한 광산 김씨 예안파 출신으로 1589년(선조 22) 문과에 합격하여 승문원 정자와 예문관 검열을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밀양과 경주 등지에서 분전하다 진중에서 병사하였다. 후일 홍문관수찬을 증직받았으며, 문집으로『近始齋集』이 있다.



서지정보 B000000752
번역정보 번역정보
저작권자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사용범위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을 통한 무료 이용
일시 2000.08.16
작업종류 해제작성,입력,교정
제작자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제작내용 해제작성,교열
行狀5



邑而民呼爺孃事有其始又令其終古

所謂君子人者非公之謂歟公之弟諱○○字

○○剛毅嚴重晩而喜學與伊溪權宇

烏川金垓共結金蘭將大有爲公常

謂吾弟才德非我之比不幸年未五十而卒

吁其惜哉公以壬子八月二十四日終于正寢

之外亭享年七十一以是年葬于府西都 率院壬坐丙向之原公娶義城(兵曹參議牙山蔣胤宗之女)生

二男二女男長進士次女長適說

李苙次適忠義朴稷進士生二男一女

男長曾孝閔孝摯無子后閔孝而早

夭無子女適忠義蔡克稽說書生四男

一女男長榮伋榮脩早死次榮係

榮儁女適權嬉次適金雲漢次適鄭儋

次適李昌遠公之孫曾孝不替家聲奉

先以誠以時明昔嘗陪侍公庭且習聞

慈氏之敎必能言公之行越險冒死訪余于寂

寞之濱留宿而求一言義不敢辭略敍

所聞見如右

戊寅三月日甥李時明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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