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牙山蔣氏 이주 역사
시조공께서 중국 송나라에서 건너와 아산에 정착한 이후 장씨 선조들은 전국 각지로 퍼져 나갔다. 이주 역사의 자취는 족보에 기록된 묘소 자료와 비문이나 문집에 기록된 단편적 자료로 추리할 수밖에 없다.
시조공은 중국 송나라 대장군으로 계셨는데 금나라에게 항복을 반대하다가 조선으로 오게 되었으며 아산시 문방리에 식읍을 받고 정착하게 되었다. 자손들도 점차 고려에 벼슬을 하게 되어 주요 관직으로 진출하였다.
증손 숭은 태자첨사 의성군 김용비의 딸에게 장가들어 경상북도 의성에서 처가살이를 하게 되었다. 처가살이를 마치고 아산으로 돌아가니 몽고군의 연이은 침입으로 문방리 일대는 폐허가 되어 있었으며 사람들에게 수소문하여도 가족들의 행방을 찾을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의성으로 돌아와 원유동에서 살게 되었으며 이 후 가족들과는 수백년 동안 단절되었다.
숭이 의성으로 장가든 후 동생 춘과 가족들은 몽고군의 난리를 피하여 삽교천 상류의 깊은 산속으로 피난하였다. 도고온천 앞 삼봉산이나 가야산 부근으로 짐작된다. 현재 족보상의 묘소 기록으로 보면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서울 북쪽(양주)을 경유하여 황해도 연백 지역에서 집성촌을 이루었다. 충청도와 경기도 등으로 갈라진 계파도 추정은 되지만 현재 족보상에 기록이 없다.
숭의 자손은 의성에 정착하여 증손 자방의 아들 5형제가 모두 고려조의 5판서를 지냈다고 한다. 둘째 아들 성발의 묘소는 잘 보존되어 있으며 문헌상에 기록도 남아 있다. 대종회에서는 의성군 점곡면 사촌(교동)에 모운재를 세우고 관리하고 있다.
(계속하여 작성)
아산장씨 이주역사에 대한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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