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지역

향인촌화계재(이요재공 사당)가 있으며 이요재공파의 집성촌이다. 

선월정 : 사이당 덕윤 선조가 짓고 많은 명사들과 교유하던 정자이다.

오천서당 : 복암공(화식) 선조가 제자를 가르치던 서당이다.

청도를 빛낸 사람들 (175명)

장방익(蔣邦翼)이요재선생의 도학

선생의 휘는 방익(邦翼)이오 호는 이요재(二樂齋)이며 본관은 아산(牙山) 으로 임진왜란 때 모친상을 당하여 시묘 살이를 하다 왜적들이 들어 닥쳐 변을 당할 뿐 하였으나 그 효성에 감탄하여 물러났다 고하며 효성으로 천거 되었던 장 사효(蔣 思孝)선생의 아들이다.

선생은 어릴때 부터 학문을 즐겨 수학하여 9세때 이미 시문에 능하였고 18세때 과거에 응했으나 서리(書吏)들의 농간이 심한 것을 보고 과방에 익명으로 하고 향리에 돌아와 정자를 세우고 후학들을 교학 하였는데 선생의 도학 문장이 세상에 그 이름이 높아 도내 사림 모두가 들어와 훈도를 받고자 하였으며 문도가 50여인 이나 되어 강학에 여념이 없었다 한다.

선생의 도학 문장이 높아 도내사림이 천거하여 북부장사랑(北部將仕郎)을 제수 받었으나 불취하고 향년 62로 졸 하였다. 뒤에 군자감정 (軍資監正)이 증직되었다. ( 참고문헌 :도주지, 청도문헌고)

장방한(蔣邦翰)국헌선생의 학행

선생의 휘는 방한(邦翰)이며 호는 국헌(菊軒)이고 본관은 아산(牙山)으로 이요재 (二樂齋), 양헌(養軒) 두 선생의 아우 이다.

선생은 천성이 순후하고 명석(明晳)하여 나이 15세에 박학하고 경학에 능통하였으며 어질고 문장에 능하여 16세에 과거에 오르고 37세에 성균관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서 학문을 연마하니 조야에 그 이름이 높았다. 향년 76에 졸 하였다. ( 참고문헌 : 도주지, 청도문헌고)

장방호(蔣邦豪)양헌선생의 학덕

선생의 휘는 방호(邦豪)이오 호는 양헌(養軒)이며 본관은 아산(牙山)으로 백형 이요재 장 방익(二樂齋 蔣 邦翼 )선생과 계제(季弟) 인 국헌 장 방한(菊軒 蔣 邦瀚)선생과 더불어 우애가 더욱 두터웠고 화계정사(華溪精舍)에서 수학하고 강론하여 도의를 닦으니 학행과 덕행이 널리 숭앙되고 그 인품과 학식이 명달 하였다. 향년 45에 졸 하였다. ( 참고문헌 :도주지, 청도문헌고)

 

Cyber World ASANJANG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