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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휘는 방익(邦翼)이오
호는 이요재(二樂齋)이며 본관은 아산(牙山) 으로 임진왜란 때 모친상을 당하여 시묘 살이를 하다 왜적들이 들어 닥쳐 변을 당할 뿐 하였으나 그
효성에 감탄하여 물러났다 고하며 효성으로 천거 되었던 장 사효(蔣 思孝)선생의 아들이다.
선생은 어릴때 부터 학문을
즐겨 수학하여 9세때 이미 시문에 능하였고 18세때 과거에 응했으나 서리(書吏)들의 농간이 심한 것을 보고 과방에 익명으로 하고 향리에 돌아와
정자를 세우고 후학들을 교학 하였는데 선생의 도학 문장이 세상에 그 이름이 높아 도내 사림 모두가 들어와 훈도를 받고자 하였으며 문도가 50여인
이나 되어 강학에 여념이 없었다 한다.
선생의 도학 문장이 높아
도내사림이 천거하여 북부장사랑(北部將仕郎)을 제수 받었으나 불취하고 향년 62로 졸 하였다. 뒤에 군자감정 (軍資監正)이 증직되었다. (
참고문헌 :도주지, 청도문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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