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헌 자료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1909 - 아산인 상호군 장영실(蔣英實)
  • 동문선 제50권, 제82권 1478 - - 김빈의 보루각기에 호군 장영실(蔣英實) 언급
  • 동사략(東史約) 1849 - - - - 장영실(蔣英實) 의 작품들에 관한 언급
  • 선택요략(選擇要略 1460?) 해제 - - - 장영실(蔣英實)에 관한 기록
  • 세종실록-장영실 : 사직(司直) 장영실(蔣英實), 행 사직(行司直) 장영실(蔣英實), 호군 장영실(蔣英實), 대호군 장영실(蔣英實), 경상도 채방별감(採訪別監) 장영실(蔣英實)
  •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권 (1530)의 흠경각, 보루각, 간의대에 대한 자세한 설명(장영실)
  • 아정유고 제7권 - - 장영실(蔣英實) 주전(鑄錢)에 관한 기록
  • 연려실기술 (1800?)- - 동래관노 장영실(蔣英實)을 면천시킴, 세종실록 내용들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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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 해제 - - - 장영실(蔣英實)이 이순지와 협력한 사실
  • 필원잡기 제1권 1487  - - 장영실(蔣英實)에 관한 언급
  • 해동야언 - - 필원잡기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였음.

國朝人物志v1

3책. 인본. 규장각 도서. 1909년(융희 3) 안종화()가 편찬, 간행하였다. 제1책은 태조부터 중종 때까지의 인물 약 900명, 제2책은 중종 때부터 인조 때까지의 인물 약 1,000명, 제3책은 인조 때 인물 일부와 철종 때까지의 인물 약 1,100명을 수록하고 있다. 각 왕대별로 인물을 싣되 역적과 간신도 모두 실었다.

각 인물의 본관읍명()·현조명()·행적을 밝히고 자손에 대해서 간략히 서술했다. 또 《국조보감》 《국조기사》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150여 종의 인용 도서를 밝혔다. 《국조인물고》보다 수록된 인물이 많고 종류별이 아닌 왕대별로 수록된 점이 다르다.

(世宗朝)蔣英實

牙山人爲上護軍上始製雅樂英實與朴堧贊成之人皆以爲堧與英實爲世宗制作之盛應期而生[주:昭代紀年]

 

동문선 []

활자본, 130권 45책. 1478년(성종 9)에 성종의 명을 받아 서거정(), 노사신()‚ 강희맹()‚ 양성지() 등 23인의 찬집관이 참여하여 편찬한 우리나라 역대 시문선집이다. 《동문선》은 이 책 외에도 1518년(중종 13)에 신용개(), 김전(), 남곤() 등이 편찬한 것과 1713년(숙종 39) 송상기() 등이 편찬한 것 등 모두 세 종류가 편찬되었다.

김빈의 보루각기문을 싣고 있으며 호군 장영실로 지칭하고 있다.

 

기년동사략(紀年東史約)

道光己酉(1849)至月卄有八日朝鮮 茅亭 李源益

장영실의 작품목록들. 세종실록 일부 인용

 

선택요약 해제문

日用行事에 택일하는 법을 요약한 책이다. 序文·跋文이 없고 刊年은 미상, 책머리에 [判中樞院事 李純之編輯]이라 쓰여 있다. 1465年(世祖 11)에 李純之가 죽은 것으로 보아 이 책은 아마 世宗朝 말기에 쓰여졌을 것이다. 이 책은 상중하 3책으로 분철된목판본이다. 상권에는 干年方의 吉凶, 支年方의 吉凶, 年凶方, 干年開山凶, 干年開山交向凶, 支年開山凶, 支年凶, 月方의 吉凶, 日方의 吉凶, 日吉, 三吉星, 四時吉日, 月外雜用吉日, 日凶, 六凶星, 四時日凶, 月外雜用凶日, 支時吉, 干時吉, 斗臨時方, 四時吉時, 四大吉時, 支時凶 등이 있고, 중권에는 年命修造吉, 凶年, 吉凶神論, 年論, 月論, 日論, 諸凶日用法, 時論, 摠論 등이 있으며 하권에는 이政類 玄門類 祭社類 冠服類 結婚類 胎養類 學業類 興工類 貨財類 出行類 種植類 飮饍類 征獵類 蠶絲類 六畜類壽木類 風水類 喪葬類 등으로 되어 있다. 編者는 字가 誠甫, 本은 陽城이다. 世宗朝에 入第해서 왕명으로 曆法을 연구함에 金淡, 蔣英實 등과 같이 하였으며 儀象을 考正하고 簡儀圭表 太平懸珠 仰釜日晷 自擊漏 등을 제조하고 또한 ≪天文類抄≫ ≪交食推步假令≫ ≪諸家易象集≫ ≪七政算外編≫ 등을 著述하였다. 그리고 官爵은 中樞院事를 거쳐 禮曹參判이 되었다가 謝恩使로서 明나라에 갔다오기도 하였다. 이 책은 일반 민중생활의 소용보다 국가행사를 염두에 두고 엮은 듯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 [新增東國輿地勝覽]

[신증동국여지승람] 조선 중종 25년(1530)에 이행 등이 왕명에 따라 《동국여지승람》을 증보하고 개정한 인문 지리서. 55권 25책의 인본(印本).

[동국여지승람] 조선 성종의 명(命)에 따라 노사신 등이 편찬한 우리나라의 지리서. 《대명일통지》를 참고하여 우리나라 각 도(道)의 지리·풍속과 그 밖의 사항을 기록하였다. 특히 누정(樓亭), 불우(佛宇), 고적(古跡), 제영(題詠) 따위의 조(條)에는 역대 명가(名家)의 시와 기문도 풍부하게 실려 있다. 55권 25책의 활자본. ≒여지승람.

김돈과 김빈의 기문들을 싣고 있으며 세종대의 기기들에 대한 설명이다. 장영실의 역할을 말하고 있음.

 

아정유고

원약허가 유진에게 보내는 편지

주전에 관한 질문과 답에서 장영실의 역할을 언급

 

연려실기술

조선 후기의 학자 이긍익(:1736~1806)이 지은 조선시대 야사총서().

59권 42책. 저자가 부친의 유배지인 신지도()에서 42세 때부터 저술하기 시작하여 타계()할 때까지 약 30년 동안에 걸쳐 완성하였다. 400여 가지에 달하는 야사에서 자료를 수집 ·분류하고 원문을 그대로 기록하였다. 원집() 33권, 속집() 7권, 별집() 19권 등 3편으로 되어 있다. 내용은 원집에 태조 이래 현종까지의 283년간(1392∼1674) 각 왕대의 주요한 사건을 사의()를 가하지 않고, 인용한 책 이름을 밝혀서 적어 나갔고, 각 왕대의 기사 끝에는 그 왕대의 상신() ·문신() ·명신()의 전기()를 덧붙였다. 속집은 숙종조() 47년간(1674∼1720)의 일들을 원집의 형식대로 적었다. 별집은 조선시대의 역대관직()을 비롯하여 각종 전례() ·문예() ·천문 ·지리 ·변위() ·역대 고전 등 항목별로 그 연혁을 수록하고 역시 인용한 책 이름을 부기하였다.

저자가 생존시부터 원집과 별집의 전사본()이 널리 퍼져 정본()이 없으므로, 저자는 본문에 여백을 두고 그때그때 새로운 사실을 덧붙여 나가는 방법을 취하였다. 조선시대 사서() 중에서도 매우 뛰어난 저작인 이 저서는 객관적인 기사본말체()로 기록되었다는 점과 사견()이 조금도 가해지지 않은 명석()한 사관()에 입각하여 불편부당()의 공정한 필치로 엮어졌다는 점에서 가히 역사서의 백미편()이라 할 수 있다. 1911년 광문회()에서 도합 34권으로, 1913년 고서간행회()에서 도합 59권으로 각각 간행하였고, 34년 계유출판사()의 《조선야사전집()》에 일부가 국한문체로 번역되어 나왔으며, 1966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고전국역총서()》 제1집으로 도합 12권으로 발행하였다.

[1]세종14년 임자에 .... 이에 정초ㆍ정인지 등은 옛글 상고하는 것을 맡고, 중추원사(中樞院使) 이천(李蕆), 호군 장영실(英實)은 기술자의 감독을 맡아 먼저 목간의(木簡儀)를 만들어서 서울에서 북극의 땅 위에 38도가 솟은 것을 측정하니 원사(元史)에 실려 있는 바의 측정한 것과 다소 부합되었다. 드디어 구리를 녹여서 여러 가지의 의상(儀象)을 만들었는데, 7년이 지난 무오년(1438)에 이룩되었다. 첫째는 대소 간의(大小簡儀)요, 둘째는 혼의 혼상(渾儀渾象)이요, 셋째는 현주 천평 정남 앙부 일구(懸珠天平定南仰釜日晷)요, 넷째는 일성 정시의(日星定時儀)요, 다섯째는 자격루(自擊漏)였다. 호군 장영실이 임금의 지혜를 받들어서 기교한 방법을 운용하여 임금의 뜻과 맞지 않는 것이 없었으므로 세종이 매우 중히 여겼다. 사람들은 모두 박연과 장영실은 모두 임금의 훌륭한 제작을 위하여 시대에 응해서 난 인재라 하였다.

[2]세종3년 신축에 남양 부사 윤사웅, 부평 부사 최천구, 동래(東萊) 관노(官奴) 장영실(蔣永實)을 내감(內監)으로 불러서 선기옥형(璇璣玉衡) 제도를 토론하여 연구하게 하니 임금의 뜻에 합하지 않음이 없었다. 임금이 크게 기뻐하여 이르기를, “영실은 비록 지위가 천하나 재주가 민첩한 것은 따를 자가 없다. 너희들이 중국에 들어가서 각종 천문 기계의 모양을 모두 눈에 익혀 와서 빨리 모방하여 만들어라.” 하고, 또 이르기를, “이 무리를 중국에 들여보낼 때에 예부에 자문을 보내어 《조력학산(造曆學算)》과 각종 천문 서책을 무역(貿易)하고 보루각(報漏閣)ㆍ흠경각의 혼천의(渾天儀) 도식을 견양(見樣)하여 가져오게 하라.” 하고, 은냥(銀兩)ㆍ물산(物産)을 많이 주었다.
○ 세종4년 임인에 사웅 등이 중국에서 돌아오면서 천문에 대한 여러 가지 서책을 사오고, 양각(兩閣)의 제도를 알아 왔으므로 곧 양각 혼의 성상도감(兩閣渾儀成象都監)을 설치하여 사웅 등에게 감조(監造)하게 하였다.
○ 세종7년 을사 10월에 양각을 준공하여 임금이 친히 내감(內監)에 가서 두루 보고 이르기를, “기이하다. 훌륭한 장영실이 중한 보배를 성취하였으니 그 공이 둘도 없다.” 하였다. 곧 면천(免賤)시키고 가자하며 실첨지(實僉知)를 제수하고 겸하여 보루사(報漏事)를 살피게 하여 서울을 떠나지 않게 하며, 감조관(監造官) 윤사웅 등 세 사람에게 안마(鞍馬)를 하사하였다.

[3] 세종 14년 임자년에 대제학 정인지ㆍ정초(鄭招)에게 명하여 간의대(簡儀臺)를 짓게 하고, 중추원사(中樞院使) 이천(李蕆), 호군(護軍) 장영실에게 일을 감독하게 하였다. 먼저 목간의(木簡儀)를 만들고, 드디어 구리를 녹여 모든 의상(儀象)을 만들었다. 첫째는 대소간의(大小簡儀), 둘째는 혼의(渾儀)ㆍ혼상(渾象), 셋째는 현주 천평 정남 앙부일귀(懸珠天平定南仰釜日晷), 넷째는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다섯째는 자격루(自擊漏)인데 무오년에 준공되었다. 세종조(世宗朝) 조에 상세하다.

 

필원잡기 [筆苑雜記]

2권 2책. 규장각도서. 초간본은 저자의 요청으로 유호인()이 관찰사 이세좌()의 지원을 얻어 1487년(성종 18)에 간행하였다. 중간본은 저자의 6대 후손인 정리()가 안동부사 임담(墰)과 전주 부윤 김남중()의 도움을 받아 1642년(인조 20)에 간행하였다.

내용은 조선의 예로부터 전하는 일사()와 한담() 중에서 후세에 전할 만한 것을 추려 모아 엮었다.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내용도 있으나, 여러 가지 참고가 될 자료가 많은 패관문학서()로서 귀중한 문헌이다. 《대동야승()》에도 수록되어 전한다.


세종이 처음 아악(雅樂)을 제정함에 중추(中樞)박연(朴煗)이 도와서 이룩하였다. 박연은 앉으나 누우나 매양 가슴에 손을 얹고 악기 치는 시늉을 하며, 입으로는 휘파람을 불어 음률(音律)의 소리를 내어가며 10여 년의 공을 쌓아 비로소 이룩하니, 세종이 매우 중하게 여겼다. 세종은 또 자격루(自擊漏)ㆍ간의대(簡儀臺)ㆍ흠경각(欽敬閣)ㆍ앙부일구(仰釜日晷) 등을 제작하였는데, 만든 것이 극히 정치(精緻)하였으며, 모두가 왕의 뜻에서 나온 것이었다. 비록 여러 공장(工匠)들이 있었으나 임금의 뜻을 맞추는 이가 없었는데, 오직 호군(護軍) 장영실(蔣英實)이 임금의 지혜를 받들어 기묘한 솜씨를 다하여 부합되지 않음이 없었으므로 임금이 매우 소중히 여겼다.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박연과 장영실은 모두 우리 세종의 훌륭한 제작을 위하여 시대에 응해서 태어난 인물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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